제철, 중공업, 조선 기업들이 판교로 모여드는 이유

제조업체 우수인력도 빨아들이고 있는 판교

 

2000년대 이후 IT·게임 업체들이 들어서면서 한국형 실리콘밸리로 자리 잡은 분당구 판교 일대에 최근 중공업·조선·제철과 같은 ‘중후장대형’ 전통 제조 기업이 몰려들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와 4차산업 혁명이 맞물리면서 굴뚝 기업 역시 미래를 위한 신기술 개발이 가장 큰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화와 신기술 개발은 더 이상 IT·게임·통신·전자업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면서 “굴뚝 산업으로 불렸던 제조업체들도 판교에 자리를 잡고 우수한 연구 개발 인력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올해 말 준공을 목표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글로벌R&D센터(GRC)를 짓고 있다. GRC에는 국내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화 시스템과 스마트워크 시스템, 공유 오피스, 피트니스 센터, 고객 라운지, 컨벤션 센터가 설치된다. 이곳에서 5000명의 연구 인력이 선박 자율 운항, 탈(脫)탄소 미래형 선박, 친환경 바이오 연료, 스마트 팩토리, 헬스케어 같은 신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은 최근 GRC 건설 현장을 찾아 “현대중공업그룹이 기술 혁신을 통해 새로운 50년을 도약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며 “최고 수준의 근무 환경을 조성해 직원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두산그룹도 지난해 1월 분당구 정자동에 신사옥인 분당두산타워를 지었다. 이곳에는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와 중장비 기업인 두산밥캣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이 입주했다. 그동안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공간이 협소해 계열사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지만, 신사옥 건립으로 한 곳에 집결한 것이다. 두산 관계자는 “신사옥 준공 이후 주요 계열사가 한 공간에 모이면서 계열사 간 소통이 늘어나고 업무 효율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삼성중공업 본사, 한화테크윈 본사, LIG넥스원 판교R&D센터, SK케미칼 본사가 판교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현대제철 서울사무소는 올해 말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사옥을 떠나 분당구 백현동 크래프톤타워로 이주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양재동에서 일해왔다. 판교 일대에 철강업체가 들어서는 것은 현대제철이 처음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임시 이사회를 열고 서울사무소 이전 안건을 의결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서울사무소를 비롯해 양재동 인근 지역에 분산된 다른 조직들도 함께 백현동 통합사무소로 들어가게 된다”면서 “이곳을 스마트오피스로 꾸미고 수소환원제철과 수소·전기차 소재사업과 같은 미래 먹거리 개발의 전진 기지로 삼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빠른 트렌드 적응 및 인재 영입 위해

중후장대 업종의 주요 제조업체들이 이처럼 판교 일대로 향하는 것은 급변하는 산업 트렌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국내 최고 IT기업이 모여 있는 판교 일대에 터를 잡고 신기술 트렌드를 발 빠르게 흡수해 기술 개발 시너지를 내겠다는 것이다.

최근 산업계에서 개발직 품귀 현상이 심화하면서 제조업체들로선 아예 판교로 들어가 인재 영입 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전략도 작용했다. 이 지역에서는 개발직들의 이직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제조업체들도 기존 IT·게임업체 못지않은 최신식 사옥을 짓고 최고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면서 인재 영입에 나서고 있다”며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제조업계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판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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